네이버 밴드글 (20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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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5.06.15 조회1회 댓글0건본문
금강경 마음공부
<제14 이상적멸분> -6
시고수보리 보살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깨달음의 마음을 낼지어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며, 또한 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어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는 그 마음을 낼지어다.)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참된 진리를 만났지만 귀한 줄 모르고 불보살님께 엎드려 다만 복만을 빌어 이루어 지기만을 바란다면 이것은 마치 최신형 핸드폰으로 전화걸고 받는 것 밖에 쓸 줄 모르거나 최고 사양의 컴퓨터로 고도리 게임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과 같고, 비싼 와인셀러에 화장품만 넣어 두거나 운동 기구를 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옷걸이가 되어 있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정말 진실한 것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인연따라 뭉쳐서 이런 저런 작용을 나투다가 그 인연의 조건들이 흩어지면 변하여 사라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금강경>에서는 일체의 존재들을 관찰하면 생겼다가 사라지는 생멸하는 모양으로 유위법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이 유위법의 존재들은 다만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에 진실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강경 말씀에는 비유하여 꿈과 같고, 헛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이나 번개 불 같이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인연화합하여 존재하기에 연기(緣起)이고 공(空)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뜻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하면 꿈 속에서 온갖 것들은 보았지만 실재로 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아도 본 적이 없고, 들어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여기 저기 오고 갔지만 사실은 오고 간 적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온갖 일들은 다 경험했지만 그런 적이 없습니다.
꿈 속에서의 나와 그 꿈에서 깨어나서 꿈인 줄 아는 나는 둘이 아닙니다.
본래 나 한 바탕의 일입니다. 그래서 가도 가도 그 자리고, 도착했다해도 출발한 그 자리라고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회당 조심스님의 <명추회요>에서
"모든 것에 결정되어진 존재의 성품이 없이 다만 마음을 따라서 수시로 변하고 오직 업(業)을 쫓아서 생겨나는 것임을 안다면 내가 따로 무슨 공력을 쓸것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에 밝다면 인연을 따라 베풀고 인연이 다하면 거두는 일들에 자재하여 일체에 걸림이 없을 것입니다."
내 눈 앞에 일어나는 일체의 경계가 오직 마음임을 모르기 때문에 그 모양, 그 소리, 그 느낌, 그 생각, 감정들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참 마음 이 변함없고 한결같은 진실한 나를 경험할 수 있다면 비로소 참된 평안이 깃들어 온갖 인연에 자유자재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할 때가 온 우주 법계의 원만한 법신 부처님을 뵙는 일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제14 이상적멸분> -6
시고수보리 보살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깨달음의 마음을 낼지어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며, 또한 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어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는 그 마음을 낼지어다.)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참된 진리를 만났지만 귀한 줄 모르고 불보살님께 엎드려 다만 복만을 빌어 이루어 지기만을 바란다면 이것은 마치 최신형 핸드폰으로 전화걸고 받는 것 밖에 쓸 줄 모르거나 최고 사양의 컴퓨터로 고도리 게임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과 같고, 비싼 와인셀러에 화장품만 넣어 두거나 운동 기구를 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옷걸이가 되어 있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정말 진실한 것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인연따라 뭉쳐서 이런 저런 작용을 나투다가 그 인연의 조건들이 흩어지면 변하여 사라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금강경>에서는 일체의 존재들을 관찰하면 생겼다가 사라지는 생멸하는 모양으로 유위법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이 유위법의 존재들은 다만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에 진실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강경 말씀에는 비유하여 꿈과 같고, 헛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이나 번개 불 같이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인연화합하여 존재하기에 연기(緣起)이고 공(空)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뜻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하면 꿈 속에서 온갖 것들은 보았지만 실재로 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아도 본 적이 없고, 들어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여기 저기 오고 갔지만 사실은 오고 간 적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온갖 일들은 다 경험했지만 그런 적이 없습니다.
꿈 속에서의 나와 그 꿈에서 깨어나서 꿈인 줄 아는 나는 둘이 아닙니다.
본래 나 한 바탕의 일입니다. 그래서 가도 가도 그 자리고, 도착했다해도 출발한 그 자리라고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회당 조심스님의 <명추회요>에서
"모든 것에 결정되어진 존재의 성품이 없이 다만 마음을 따라서 수시로 변하고 오직 업(業)을 쫓아서 생겨나는 것임을 안다면 내가 따로 무슨 공력을 쓸것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에 밝다면 인연을 따라 베풀고 인연이 다하면 거두는 일들에 자재하여 일체에 걸림이 없을 것입니다."
내 눈 앞에 일어나는 일체의 경계가 오직 마음임을 모르기 때문에 그 모양, 그 소리, 그 느낌, 그 생각, 감정들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참 마음 이 변함없고 한결같은 진실한 나를 경험할 수 있다면 비로소 참된 평안이 깃들어 온갖 인연에 자유자재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할 때가 온 우주 법계의 원만한 법신 부처님을 뵙는 일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