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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4.19 조회296회 댓글0건본문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집성제(集聖諦) – 8
대만 초또푸
대만을 떠올리면, 제게는 먼저 냄새 하나가 떠오릅니다.
골목 어귀에서 코를 찌르듯 올라오던 그 강렬한 향기.
바로 초또푸, 삭힌 두부입니다.
처음에는 고개를 돌릴 만큼 낯설고 거북한 냄새였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다시 찾게 되는 끌림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참 맛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맛있다, 맛없다는 것이
과연 두부의 일입니까.
비가 오는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런 날엔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좋겠다”며
낭만을 이야기합니다.
우울함과 낭만이
비의 성질입니까.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도 그러합니다.
누군가는 시원하게 가슴이 트인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그 바다에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난 뒤라
그저 눈물부터 흐른다고 합니다.
상쾌함과 슬픔이
바다의 일이겠습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은 대상의 일이 아니라
우리 마음 한 바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저 일 때문에 괴롭다.”
“저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비추어 보면
괴로움은 대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괴롭다, 즐겁다는
일체의 모든 분별은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잠시의 물결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변하는 것은
의지할 바가 되지 못하고,
의지할 수 없는 것은
끝내 허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를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물거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붙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없애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를
바르게 보는 일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아직 좋고 싫음이 나뉘기 전,
본래 아무 일도 없던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우리의 참마음입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일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바탕을
조용히 돌아보는 일입니다.
이를 두고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집착이 생기기도 합니다.
“생각을 없애야 한다.”
“잡념이 없어야 수행이 잘된다.”
그래서 애써 마음을 눌러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석압초(如石壓草)라
돌로 풀을 눌러 놓은 것과 같아서
잠시 조용할 뿐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지치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을 바다에 비유합니다.
본래의 참마음은
깊고 넓은 바다와 같고,
생각과 감정은
그 위에 이는 파도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파도를 없애야
바다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파도를 잠재우려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사라져야만
바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도 그 자체가 이미 바다입니다.
일어나는 생각도,
스치는 감정도,
들리고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따로 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그대로 한 바탕의 마음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알아차릴 때
굳이 없애려 애쓰지 않아도
쫓아가지 않아도
그저 일어나고
그저 사라질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늘 변함없이 자리한
고요한 바탕이 드러납니다.
수행은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이미 그러한 이치를 조용히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그 자리에 서면
세상은 여전히 흐르되
마음은
흐름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집성제(集聖諦) – 8
대만 초또푸
대만을 떠올리면, 제게는 먼저 냄새 하나가 떠오릅니다.
골목 어귀에서 코를 찌르듯 올라오던 그 강렬한 향기.
바로 초또푸, 삭힌 두부입니다.
처음에는 고개를 돌릴 만큼 낯설고 거북한 냄새였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다시 찾게 되는 끌림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참 맛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맛있다, 맛없다는 것이
과연 두부의 일입니까.
비가 오는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런 날엔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좋겠다”며
낭만을 이야기합니다.
우울함과 낭만이
비의 성질입니까.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도 그러합니다.
누군가는 시원하게 가슴이 트인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그 바다에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난 뒤라
그저 눈물부터 흐른다고 합니다.
상쾌함과 슬픔이
바다의 일이겠습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은 대상의 일이 아니라
우리 마음 한 바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저 일 때문에 괴롭다.”
“저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비추어 보면
괴로움은 대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괴롭다, 즐겁다는
일체의 모든 분별은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잠시의 물결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변하는 것은
의지할 바가 되지 못하고,
의지할 수 없는 것은
끝내 허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를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물거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붙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없애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를
바르게 보는 일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아직 좋고 싫음이 나뉘기 전,
본래 아무 일도 없던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우리의 참마음입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일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바탕을
조용히 돌아보는 일입니다.
이를 두고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집착이 생기기도 합니다.
“생각을 없애야 한다.”
“잡념이 없어야 수행이 잘된다.”
그래서 애써 마음을 눌러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석압초(如石壓草)라
돌로 풀을 눌러 놓은 것과 같아서
잠시 조용할 뿐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지치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을 바다에 비유합니다.
본래의 참마음은
깊고 넓은 바다와 같고,
생각과 감정은
그 위에 이는 파도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파도를 없애야
바다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파도를 잠재우려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사라져야만
바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도 그 자체가 이미 바다입니다.
일어나는 생각도,
스치는 감정도,
들리고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따로 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그대로 한 바탕의 마음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알아차릴 때
굳이 없애려 애쓰지 않아도
쫓아가지 않아도
그저 일어나고
그저 사라질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늘 변함없이 자리한
고요한 바탕이 드러납니다.
수행은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이미 그러한 이치를 조용히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그 자리에 서면
세상은 여전히 흐르되
마음은
흐름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