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밴드글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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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4.01 조회289회 댓글0건본문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집성제(集聖諦) -4
같은 컵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아무 생각이 없고,
누군가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 컵은 내 것이다.”
“이건 비싼 건데…”
“깨지면 안 된다…”
그 순간부터 이미 괴로움은 시작됩니다.
컵이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컵을 ‘내 것’으로 붙잡은
그 마음이 문제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왜 저렇게 말하지…”
“나를 무시했나…”
“나를 싫어하나…”
이때 괴로움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붙잡고 해석하는
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집성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세계 위에
‘나’라는 중심을 세우고
거기에서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집(集)이라는 말 그대로
괴로움은 한 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 하나, 감정 하나, 집착 하나가
모이고 또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컵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마음이
어디에서 ‘나’를 세우고 있는지,
어디에서 붙잡고 있는지를
비추어 보는 일입니다.
무아를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나는 없다”는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붙잡을 ‘나’가 없음을 알 때
붙잡을 이유도 사라지고,
밀어낼 이유도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취사심이 약해지고,
괴로움을 모으는 힘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집성제를 통해
이렇게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괴로움을 없애려 애쓰지 말고,
괴로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라.
그 만들어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이미 그 괴로움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결국 집성제는
외부를 탓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마음을 밝히는 가르침입니다.
연기를 바로 보면
무아가 보이고,
무아를 바로 보면
집착이 풀리고,
집착이 풀리면
괴로움은 더 이상 모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은 세상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나’를 세운 마음이 모아 만든 것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일주문 옆 홀로 서있는 매화나무 꽃향기에 취합니다. 차로 휭하니 지나지 마시고 이 밴치에 앉아 아직 남은 봄의 향기를 사진 한장 기념으로 찍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며칠전 봄비가 추적가리며 오는 소리에 놀라 겨울잠에서 깬 이른 벚꽃이 하아얀 잇몸을 드러내 웃기 시작합니다.
며칠후 산신철야때 참석하셔서 계룡산 신원사 밤 벚꽃도 구경하세요.
멋진 신원사의 봄은 이렇게 익어갑니다.








집성제(集聖諦) -4
같은 컵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아무 생각이 없고,
누군가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 컵은 내 것이다.”
“이건 비싼 건데…”
“깨지면 안 된다…”
그 순간부터 이미 괴로움은 시작됩니다.
컵이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컵을 ‘내 것’으로 붙잡은
그 마음이 문제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왜 저렇게 말하지…”
“나를 무시했나…”
“나를 싫어하나…”
이때 괴로움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붙잡고 해석하는
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집성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세계 위에
‘나’라는 중심을 세우고
거기에서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집(集)이라는 말 그대로
괴로움은 한 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 하나, 감정 하나, 집착 하나가
모이고 또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컵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마음이
어디에서 ‘나’를 세우고 있는지,
어디에서 붙잡고 있는지를
비추어 보는 일입니다.
무아를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나는 없다”는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붙잡을 ‘나’가 없음을 알 때
붙잡을 이유도 사라지고,
밀어낼 이유도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취사심이 약해지고,
괴로움을 모으는 힘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집성제를 통해
이렇게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괴로움을 없애려 애쓰지 말고,
괴로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라.
그 만들어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이미 그 괴로움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결국 집성제는
외부를 탓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마음을 밝히는 가르침입니다.
연기를 바로 보면
무아가 보이고,
무아를 바로 보면
집착이 풀리고,
집착이 풀리면
괴로움은 더 이상 모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은 세상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나’를 세운 마음이 모아 만든 것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일주문 옆 홀로 서있는 매화나무 꽃향기에 취합니다. 차로 휭하니 지나지 마시고 이 밴치에 앉아 아직 남은 봄의 향기를 사진 한장 기념으로 찍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며칠전 봄비가 추적가리며 오는 소리에 놀라 겨울잠에서 깬 이른 벚꽃이 하아얀 잇몸을 드러내 웃기 시작합니다.
며칠후 산신철야때 참석하셔서 계룡산 신원사 밤 벚꽃도 구경하세요.
멋진 신원사의 봄은 이렇게 익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