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밴드글 (202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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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2.23 조회308회 댓글0건본문
사성제 법문에 들어가는 말
지금 당신에게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불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피해야 할 짐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향하는 복된 징표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불만족이 있다는 사실은
삶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삶을 바로 보려는 희망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삶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괴로움이 없다고 말하지 않으셨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라고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에게는
괴로움이 있고(苦)
그 괴로움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으며(集)
그 괴로움은 반드시 소멸될 수 있고(滅)
그 소멸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이 있다(道)고.
이것이 바로 사성제(四聖諦)입니다.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앞에 불안한 상황이 있고,
피하고 싶은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인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괴로움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괴로움을 진리의 출발점으로 삼으셨습니다.
괴로움은 중생을 깨우는 종소리이며,
두려움은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경고음이며,
불만족은 해탈을 향한 문을 두드리는 손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괴로움마저도 성스러운 진리라 부릅니다.
이 인연으로 우리는
모든 번뇌의 불길이 완전히 꺼진
해탈과 열반을 발원하게 되고,
진리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여러분,
괴로움 앞에서 주저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괴로움에서 도망칠 필요도 없습니다.
괴로움이 만들어내는 그 강한 에너지를
버리지 마십시오.
다만 그 에너지의 방향만 바꾸십시오.
원망과 좌절로 쓰지 말고,
발원과 수행의 동력으로 삼으십시오.
그때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참마음 법신 부처님을 만나는 법력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기회조차 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겉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다행하다 여기며
금생의 복력을 허비하는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신심이 식어가는 줄 알면서도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쉽고 편한 길만을 찾아다니며,
작은 복의 두레박에 담긴 물맛에 취해
삼계의 고해를 벗어날 날은
기약조차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남기신 이 게송은
바로 이 사실을 일깨웁니다.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
삼계를 돌고 도는 것이 마치 우물의 두레박 같아서
백천만겁력미진(百千萬劫歷微塵)
백천만 겁을 먼지처럼 오르내리네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다시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하리요.
탐욕에 끌려 사는 삶,
집착으로 분노를 쌓는 삶,
어리석음에 잠겨 반복되는 삶.
이 삶에서 벗어나고자
진심으로 발원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참된 불자의 마음입니다.
이제 사성제의 가르침을 따라
괴로움의 의미를 바로 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분명히 밝히며,
괴로움이 사라질 수 있음을 믿고,
그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고자 합니다.
이 법문이
여러분의 마음공부를
한층 더 깊고 단단하게 하는
귀한 인연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제가 명성황후 추모재를 위해 만들었던 곡 <황후의 기도>가 꼬마들도 따라 부르고 좋아하는 최애 노래라고 영상을 보내왔습니다.ㅎㅎ
덕분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불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피해야 할 짐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향하는 복된 징표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불만족이 있다는 사실은
삶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삶을 바로 보려는 희망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삶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괴로움이 없다고 말하지 않으셨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라고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에게는
괴로움이 있고(苦)
그 괴로움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으며(集)
그 괴로움은 반드시 소멸될 수 있고(滅)
그 소멸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이 있다(道)고.
이것이 바로 사성제(四聖諦)입니다.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앞에 불안한 상황이 있고,
피하고 싶은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인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괴로움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괴로움을 진리의 출발점으로 삼으셨습니다.
괴로움은 중생을 깨우는 종소리이며,
두려움은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경고음이며,
불만족은 해탈을 향한 문을 두드리는 손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괴로움마저도 성스러운 진리라 부릅니다.
이 인연으로 우리는
모든 번뇌의 불길이 완전히 꺼진
해탈과 열반을 발원하게 되고,
진리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여러분,
괴로움 앞에서 주저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괴로움에서 도망칠 필요도 없습니다.
괴로움이 만들어내는 그 강한 에너지를
버리지 마십시오.
다만 그 에너지의 방향만 바꾸십시오.
원망과 좌절로 쓰지 말고,
발원과 수행의 동력으로 삼으십시오.
그때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참마음 법신 부처님을 만나는 법력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기회조차 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겉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다행하다 여기며
금생의 복력을 허비하는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신심이 식어가는 줄 알면서도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쉽고 편한 길만을 찾아다니며,
작은 복의 두레박에 담긴 물맛에 취해
삼계의 고해를 벗어날 날은
기약조차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남기신 이 게송은
바로 이 사실을 일깨웁니다.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
삼계를 돌고 도는 것이 마치 우물의 두레박 같아서
백천만겁력미진(百千萬劫歷微塵)
백천만 겁을 먼지처럼 오르내리네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다시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하리요.
탐욕에 끌려 사는 삶,
집착으로 분노를 쌓는 삶,
어리석음에 잠겨 반복되는 삶.
이 삶에서 벗어나고자
진심으로 발원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참된 불자의 마음입니다.
이제 사성제의 가르침을 따라
괴로움의 의미를 바로 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분명히 밝히며,
괴로움이 사라질 수 있음을 믿고,
그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고자 합니다.
이 법문이
여러분의 마음공부를
한층 더 깊고 단단하게 하는
귀한 인연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제가 명성황후 추모재를 위해 만들었던 곡 <황후의 기도>가 꼬마들도 따라 부르고 좋아하는 최애 노래라고 영상을 보내왔습니다.ㅎㅎ
덕분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