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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4.10.16 조회283회 댓글0건본문
반야심경의 핵심 키워드 <오온개공>
반야심경에서 우리의 고통을 해결하는 핵심의 키워드라고 하면 <오온개공> 즉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구절일 것입니다.
색수상행식의 오온(五蘊)은 우주법계의 존재와 더불어 나라고 하는 우리 존재를 다섯 가지 조건들이 모여진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몸과 느낌 생각 욕망 의식의 정신작용이 결합하여 이루고 있습니다.
더 간단히 우리는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의 말씀처럼
나라고 생각하는 몸과 마음인 이 오온은 진실한 실체가 아니라 그것들 모두 텅비어 공하다는 말씀으로 우리의 당연한 믿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의심하지 않고 나와 동일시 하고 있는 우리의 몸과 생각 감정 오감등은 내가 아니고 허망한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닌 허망한 것을 나라고 알고 있어서 고통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차, 나의 집, 나의 신발, 나의 옷, 나의 모자처럼 ...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오감이라고 말하듯이 내가 아닌 나의 소유나 그 작용으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은 대상이지 내가 아닙니다.
달마대사의 안심법문처럼 .. "그 불안을 내놔봐라."
내 보일수 있다면 그건은 대상이니 나와 상관없다.
내 보일수 없다면 실체없는 것이니 또한 허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몸과 생각 감정 오감을 나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인연따라 생겼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져 변하는 허망한 것이라는 그 착각의 꿈을 깨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거짓된 나를 진실한 나로 착각해서 생긴 것인줄 알았다면 그 허망한 집착의 손을 놓고 그 관심의 방향을 바꾸어 변함없이 진실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참으로 다행인 것은 돌아보면 우리의 모든 고통은 나라고 믿었던 그 몸과 생각과 감정들로 부터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나 내 몸이 내가 아니고, 내 생각이 내가 아니고, 내 감정들이 내가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동안 의심없이 나라고 여겼던 우리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그것을 나로 동일시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지극 정성으로 돌봐왔지만 그것은 옷장 속에 갈아입을 옷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줄 알지만 우리는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기에 그것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도 마찬 가지 입니다.
생각을 나라고 동일시했기 때문에 지금껏 생각에 의지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이 진실한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어떤 상황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다른 일에 몰두해서 그 상황을 생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그리고 상황이 나를 괴롭히는 것에 비해서 내가 생각을 계속 붙잡고 이어 나가면서 그것이 진실한 것으로 힘을 실어줄때 우리의 고통은 두 배 세 배 이상으로 커지게 됨을 봅니다.
사실 참선해보면 아시겠지만 우리의 생각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없애려고 애를 쓰면 쓸 수록 꼬리를 물고 그 속에서 한참을 헤매야 됩니다.
생각은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업식 속에서 경험한 것들이 저장되어 있다가 인연에 따라 조건 반사적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성주 심원사 선원에서 정진할때 일입니다. 무문관 형식의 선원이지만 점심공양때는 방문을 열어주어 잠시 산길을 포행합니다.
그때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이 여기 절 뒷산인 가야산까지 이동했으니 조심하라고 사중 스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포행을 하는데 무심코 나무 지팡이가 조릿대 가득한 풀숲에 부딪쳐 스르륵하는 소리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는 모습에 혼자 피식 웃습니다.
외부 자극에 자동적으로 일어난 생각일 뿐입니다. 이렇듯 생각 감정 오감은 인연에 따라 생겼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입니다.
생각이란 놈은 진실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물결처럼 실체없는 허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다 싫다는 분별하는 생각을 일으켜서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가지고 싶은 생각을 일으켰지만 만족하지 못할때 괴롭고, 어떤 상황이나 미운 사람과 불편하고 싫다는 생각이 일어나 밀어 낼 때 괴롭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하지만 헤어지게 되니 고통스럽습니다.
여기서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이 생각이란 놈이 정말 진실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한 것이 아닌 것을 쥐고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는 연습인 수행을 하도록 합니다.
화두수행을 하는 분은 그 생각의 자리에 화두를 올려놓고, 관세음기도를 하는 분은 관세음보살 명호를 올려놓고, 대비주기도를 하는 분은 그 생각의 자리에 대비주를 지극하게 염송하는 것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




반야심경에서 우리의 고통을 해결하는 핵심의 키워드라고 하면 <오온개공> 즉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구절일 것입니다.
색수상행식의 오온(五蘊)은 우주법계의 존재와 더불어 나라고 하는 우리 존재를 다섯 가지 조건들이 모여진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몸과 느낌 생각 욕망 의식의 정신작용이 결합하여 이루고 있습니다.
더 간단히 우리는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의 말씀처럼
나라고 생각하는 몸과 마음인 이 오온은 진실한 실체가 아니라 그것들 모두 텅비어 공하다는 말씀으로 우리의 당연한 믿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의심하지 않고 나와 동일시 하고 있는 우리의 몸과 생각 감정 오감등은 내가 아니고 허망한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닌 허망한 것을 나라고 알고 있어서 고통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차, 나의 집, 나의 신발, 나의 옷, 나의 모자처럼 ...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오감이라고 말하듯이 내가 아닌 나의 소유나 그 작용으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은 대상이지 내가 아닙니다.
달마대사의 안심법문처럼 .. "그 불안을 내놔봐라."
내 보일수 있다면 그건은 대상이니 나와 상관없다.
내 보일수 없다면 실체없는 것이니 또한 허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몸과 생각 감정 오감을 나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인연따라 생겼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져 변하는 허망한 것이라는 그 착각의 꿈을 깨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거짓된 나를 진실한 나로 착각해서 생긴 것인줄 알았다면 그 허망한 집착의 손을 놓고 그 관심의 방향을 바꾸어 변함없이 진실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참으로 다행인 것은 돌아보면 우리의 모든 고통은 나라고 믿었던 그 몸과 생각과 감정들로 부터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나 내 몸이 내가 아니고, 내 생각이 내가 아니고, 내 감정들이 내가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동안 의심없이 나라고 여겼던 우리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그것을 나로 동일시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지극 정성으로 돌봐왔지만 그것은 옷장 속에 갈아입을 옷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줄 알지만 우리는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기에 그것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도 마찬 가지 입니다.
생각을 나라고 동일시했기 때문에 지금껏 생각에 의지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이 진실한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어떤 상황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다른 일에 몰두해서 그 상황을 생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그리고 상황이 나를 괴롭히는 것에 비해서 내가 생각을 계속 붙잡고 이어 나가면서 그것이 진실한 것으로 힘을 실어줄때 우리의 고통은 두 배 세 배 이상으로 커지게 됨을 봅니다.
사실 참선해보면 아시겠지만 우리의 생각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없애려고 애를 쓰면 쓸 수록 꼬리를 물고 그 속에서 한참을 헤매야 됩니다.
생각은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업식 속에서 경험한 것들이 저장되어 있다가 인연에 따라 조건 반사적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성주 심원사 선원에서 정진할때 일입니다. 무문관 형식의 선원이지만 점심공양때는 방문을 열어주어 잠시 산길을 포행합니다.
그때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이 여기 절 뒷산인 가야산까지 이동했으니 조심하라고 사중 스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포행을 하는데 무심코 나무 지팡이가 조릿대 가득한 풀숲에 부딪쳐 스르륵하는 소리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는 모습에 혼자 피식 웃습니다.
외부 자극에 자동적으로 일어난 생각일 뿐입니다. 이렇듯 생각 감정 오감은 인연에 따라 생겼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입니다.
생각이란 놈은 진실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물결처럼 실체없는 허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다 싫다는 분별하는 생각을 일으켜서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가지고 싶은 생각을 일으켰지만 만족하지 못할때 괴롭고, 어떤 상황이나 미운 사람과 불편하고 싫다는 생각이 일어나 밀어 낼 때 괴롭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하지만 헤어지게 되니 고통스럽습니다.
여기서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이 생각이란 놈이 정말 진실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한 것이 아닌 것을 쥐고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는 연습인 수행을 하도록 합니다.
화두수행을 하는 분은 그 생각의 자리에 화두를 올려놓고, 관세음기도를 하는 분은 관세음보살 명호를 올려놓고, 대비주기도를 하는 분은 그 생각의 자리에 대비주를 지극하게 염송하는 것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