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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4.10.23 조회246회 댓글0건본문
10.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2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모든 분별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 해탈이며 본래 고요한 적멸의 자리를 체험하는 것을 열반이라고 말합니다.
진실한 나의 참모습인 본래 성품 마음자리는 모양이 없기에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나고 죽음의 생멸이 없다는 말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고 아무일 없음에 밝게 계합하여 모든 집착에서 벗어남이 해탈이라고 말하고, 우리 앞에 드러나 있는 모든 모양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근본성품 참마음 바탕에 나고 죽고를 반복하며 스스로 지어왔던 업식이 만들어낸 그림자 영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면 지금껏 그것이 실재로 알고 쫓아 다니며 근심 걱정하던 그 고통이 사라지면 본래 고요한 자리가 드러나는 것을 열반이라고 말합니다.
육조단경의 말씀에
"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모든 어리석은 사람은 오온(五蘊)의 화합(和合)을 보고는 자신의 모습으로 여기고, 모든 법을 분별하여 바깥 삼라만상의 모습으로 여겨, 생(生)을 좋아하고 사(死)를 싫어하여 순간순간 흘러가며,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은 허망한 가짜를 알지 못하고 헛되이 윤회를 받으며, 늘 즐거운 열반을 도리어 괴로운 모습으로 여겨 종일토록 치달려 구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는 이에 열반의 참된 즐거움을 보여 주신 것이다."
본래 고요한 바다의 물이 열반의 모습이라면 업풍에 물결치며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 생사의 모습입니다.
생사와 열반은 삶과 죽음 그리고 열반 적정의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습 속에서도 늘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합니다. 파도는 바람이 불어서 일어난 것이므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라는 것이 본래 없는것이므로 파도는 실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닷물과 파도는 둘이면서도 둘이 아닙니다. 바닷물이 파도이고, 그 파도는 바닷물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렇듯 인연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실체가 없습니다.
보이는 현상을 따라서 이름과 모양을 띠는 것은 잠시 그러할뿐 또 인연이 다하면 본래로 돌아가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앞에 놓인 그 어떤것이든 그것이 실제인 것으로 믿고 쫓아간다면 허망한 그림자놀이 임을 알아채야 합니다.
실체가 없는 그것을 잡으려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는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변화에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지금 여러분의 걱정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와 질것입니다.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우리의 참 성품자리의 바다에서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것임을 투철하게 알아서 이 변하는 물결에 집착하여 끌려다니지 않는 다면 모든 물결 물결 그 하나 하나에서 차별없는 물을 보게 될것입니다.
그렇게만 볼 수 있다면 물결이 생기고 사라지는 그 변화는 다만 인연따라 오고 가는 일임에 밝아 어디에도 걸림없는 대 자유를 누리게 될것입니다.
대 선지식인 마조스님과 제자 백장스님과 대화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마조도인이 백장(百丈) 시자를 데리고 산골 들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도중에 저수지에서 놀던 오리떼가 인기척이 있으니 퍼드득 날아갔습니다.
마조선사가 묻습니다.
“저기 날아가는 것이 무엇인고?”
“들오리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묻습니다.
“어디로 날아 갔는고?”
“저 산 너머로 날아 갔습니다.”
이렇게 답하자마자 마조선사께서 시자의 코를 잡아 비틀었습니다.
그러자 시자가 “아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마조선사께서
“언제 날아간적이 있었느냐!”
(이래도 날아갔다고 말하겠느냐)
여러분 이 이야기에서 감이 좀 오십니까?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모든 분별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 해탈이며 본래 고요한 적멸의 자리를 체험하는 것을 열반이라고 말합니다.
진실한 나의 참모습인 본래 성품 마음자리는 모양이 없기에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나고 죽음의 생멸이 없다는 말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고 아무일 없음에 밝게 계합하여 모든 집착에서 벗어남이 해탈이라고 말하고, 우리 앞에 드러나 있는 모든 모양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근본성품 참마음 바탕에 나고 죽고를 반복하며 스스로 지어왔던 업식이 만들어낸 그림자 영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면 지금껏 그것이 실재로 알고 쫓아 다니며 근심 걱정하던 그 고통이 사라지면 본래 고요한 자리가 드러나는 것을 열반이라고 말합니다.
육조단경의 말씀에
"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모든 어리석은 사람은 오온(五蘊)의 화합(和合)을 보고는 자신의 모습으로 여기고, 모든 법을 분별하여 바깥 삼라만상의 모습으로 여겨, 생(生)을 좋아하고 사(死)를 싫어하여 순간순간 흘러가며,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은 허망한 가짜를 알지 못하고 헛되이 윤회를 받으며, 늘 즐거운 열반을 도리어 괴로운 모습으로 여겨 종일토록 치달려 구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는 이에 열반의 참된 즐거움을 보여 주신 것이다."
본래 고요한 바다의 물이 열반의 모습이라면 업풍에 물결치며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 생사의 모습입니다.
생사와 열반은 삶과 죽음 그리고 열반 적정의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습 속에서도 늘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합니다. 파도는 바람이 불어서 일어난 것이므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라는 것이 본래 없는것이므로 파도는 실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닷물과 파도는 둘이면서도 둘이 아닙니다. 바닷물이 파도이고, 그 파도는 바닷물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렇듯 인연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실체가 없습니다.
보이는 현상을 따라서 이름과 모양을 띠는 것은 잠시 그러할뿐 또 인연이 다하면 본래로 돌아가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앞에 놓인 그 어떤것이든 그것이 실제인 것으로 믿고 쫓아간다면 허망한 그림자놀이 임을 알아채야 합니다.
실체가 없는 그것을 잡으려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는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변화에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지금 여러분의 걱정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와 질것입니다.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우리의 참 성품자리의 바다에서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것임을 투철하게 알아서 이 변하는 물결에 집착하여 끌려다니지 않는 다면 모든 물결 물결 그 하나 하나에서 차별없는 물을 보게 될것입니다.
그렇게만 볼 수 있다면 물결이 생기고 사라지는 그 변화는 다만 인연따라 오고 가는 일임에 밝아 어디에도 걸림없는 대 자유를 누리게 될것입니다.
대 선지식인 마조스님과 제자 백장스님과 대화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마조도인이 백장(百丈) 시자를 데리고 산골 들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도중에 저수지에서 놀던 오리떼가 인기척이 있으니 퍼드득 날아갔습니다.
마조선사가 묻습니다.
“저기 날아가는 것이 무엇인고?”
“들오리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묻습니다.
“어디로 날아 갔는고?”
“저 산 너머로 날아 갔습니다.”
이렇게 답하자마자 마조선사께서 시자의 코를 잡아 비틀었습니다.
그러자 시자가 “아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마조선사께서
“언제 날아간적이 있었느냐!”
(이래도 날아갔다고 말하겠느냐)
여러분 이 이야기에서 감이 좀 오십니까?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