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밴드글 (2024-07-14)
페이지 정보
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4.07.14 조회662회 댓글0건본문
금강경 수지독송의 공덕
광덕 큰스님은 경전독송이 목소리의 성대의 울림이 아닌 육체를 넘어선 진리 생명에 파동을 일으키는 방법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경을 읽고 대비주 염불을 하는 것또한 그대로 자기 내면에 본래 깃들어 있는 진리의 광명을 비추어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경전을 받아 지니고 기쁘게 독송하고 그 경전의 말씀을 이해하여 다른 이들에게 잘 전해주고 행함으로써 우리들 주변을 광명으로 충만하게 하는 불자가 되어야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금강경이 해당하는 반야부경전의 말씀은 부처님의 45년 설법가운에 반에 해당하는 21년동안 법문하셨습니다.
반야부의 핵심이되는 금강경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수있습니다.
먼저 <제15 지경공덕분>에서
"수보리야, 이 경은 생각할수도 없고<유불가사의> 헤아릴수도 없는<불가칭량> 끝없이 많은 공덕 <무변공덕>이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경은 아무나에게 설하고 인연할 수 있는 경이 아니라 이 경의 가르침이 지닌 복덕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오로지 최상의 지혜를 지닌 사람을 위하여 설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중생과 함께 깨달음으로 가는 공부에 마음을 낸 사람들을 위하여 이 가르침을 설하셨으며 <여래위발대승자설>, 부처님의 세상으로 가는 최상승의 길에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이 가르침을 설하셨기 때문이다 <위발최상승자설>"
〈제8 의법출생분〉에서
"일체제불과 모든 부처님의 진리의 법<일체제불 급제불아뇩다라삼막삼보리법〉이 모두 이경전에서 나왔기때문이다〈개종차경출〉 "
그리고 〈제12 존중정교분>에서는
사구게만이라도 다른이들에게 전하여준다면〈수설시경내지사구게등>
바로 그곳이〈당지차처> 천,인,아수라등이〈일체 세간천인아수라> 불탑에 공양하듯이 할것이다〈개 응공양여불탑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금강경이 있는 이 장소는〈약시경전 소재지처〉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요〈즉위유불> 존경하고 받들어 모셔야할 위대한 스승이 있는곳〈약존중제자>과 같으니라"
〈제13 여법수지분〉에서는
심지어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많은 목숨을 보시했더라도〈이항하사등신명보시〉 그 복은 금강경가운에 사구게 만이라고 받아지녀서<어 차경중 내지사구게등〉 다른이들에게 설하는〈위타인설> 그 복이 더욱 많다고〈기복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16 능정업장분〉에서는
이경을 받아지니며 읽고 외울때〈수지독송차경> 누군가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욕을 먹는다면〈약위인경천〉이 사람은 금생에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으로써〈이금세인경천고> 전생의 업장소멸이 되는것이다〈선세죄업 즉위소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금강경수지 독송하는 그 공덕에 대해서〈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만약에 구체적으로 상세히 이야기해준다면<아약구설자>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듣고〈혹유인문> 바로 미쳐버릴것이거나〈심즉광란> 의심하고 도저히 믿지 않을것이다〈호의불신>.
그리고 이 경의 뜻〈당지시경의>도 가히 생각할 수 없고〈불가사의〉 과보 또한 생각할 수없다〈과보역불가사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호의불신이라는 말은 여우같은 의심을 낸다는 말입니다. 여우의 의심병을 부처님께서 금강경의 수지독송의 공덕을 의심하는 이들의 비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금강경의 말씀을 혹시 못 믿거나 의심을 낼까하는 노파심에 〈제14분〉에서 "내말 좀 믿어라, 내가 너희들한테 설마 거짓말하겠나"라고 정말 이 말씀들이 진실이고 거짓이 없는것이라고 두번 세번 강조하시는 부처님의 자상함에 한번 더 머리가 숙여지는 구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여래는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시진어자>,
실다운말을 하는 자며<실어자>,
사실과 같이 말을 하는 자며〈여어자〉,
거짓이 아닌 말을 하는 자며〈불광어자>,
다르지않은 말을 하는 자니라〈불이어자>,"
그리고 우리들이 금강경 수지독송해서 복을 받고 공덕을 얻것으로만 만족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거나 실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것을 우려해서 금강경 수지독송의 공덕을 설하시면서도 잊지않고 당부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공덕과 복덕의 형상에 머물러 탐착하고 집착함을 경책하셨습니다.
그래서 〈제28 불수불탐분〉에서도
보살은 복덕을 지을뿐〈보살 소작복덕>
그 복덕에 탐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기에〈불응 탐착> 이런 까닭에 복덕을 받지 않는다〈시고설 불수복덕>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덕이라는 어떤 고정된 성품이 본디 없음을 알아서 그 가운데 집착하는 헛된 마음을 내려놓았을때 진정한 경전수지독송 공덕이 완성되는 것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육조 혜능스님이 출가 전에 나무지게를 지고 주막을 지나다가 어떤이가 금강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마침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열리었듯이 계룡산 신원사 불자님들도 어느 구절 어느 곳에서 마음이 확 열리어 밝아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
광덕 큰스님은 경전독송이 목소리의 성대의 울림이 아닌 육체를 넘어선 진리 생명에 파동을 일으키는 방법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경을 읽고 대비주 염불을 하는 것또한 그대로 자기 내면에 본래 깃들어 있는 진리의 광명을 비추어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경전을 받아 지니고 기쁘게 독송하고 그 경전의 말씀을 이해하여 다른 이들에게 잘 전해주고 행함으로써 우리들 주변을 광명으로 충만하게 하는 불자가 되어야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금강경이 해당하는 반야부경전의 말씀은 부처님의 45년 설법가운에 반에 해당하는 21년동안 법문하셨습니다.
반야부의 핵심이되는 금강경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수있습니다.
먼저 <제15 지경공덕분>에서
"수보리야, 이 경은 생각할수도 없고<유불가사의> 헤아릴수도 없는<불가칭량> 끝없이 많은 공덕 <무변공덕>이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경은 아무나에게 설하고 인연할 수 있는 경이 아니라 이 경의 가르침이 지닌 복덕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오로지 최상의 지혜를 지닌 사람을 위하여 설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중생과 함께 깨달음으로 가는 공부에 마음을 낸 사람들을 위하여 이 가르침을 설하셨으며 <여래위발대승자설>, 부처님의 세상으로 가는 최상승의 길에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이 가르침을 설하셨기 때문이다 <위발최상승자설>"
〈제8 의법출생분〉에서
"일체제불과 모든 부처님의 진리의 법<일체제불 급제불아뇩다라삼막삼보리법〉이 모두 이경전에서 나왔기때문이다〈개종차경출〉 "
그리고 〈제12 존중정교분>에서는
사구게만이라도 다른이들에게 전하여준다면〈수설시경내지사구게등>
바로 그곳이〈당지차처> 천,인,아수라등이〈일체 세간천인아수라> 불탑에 공양하듯이 할것이다〈개 응공양여불탑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금강경이 있는 이 장소는〈약시경전 소재지처〉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요〈즉위유불> 존경하고 받들어 모셔야할 위대한 스승이 있는곳〈약존중제자>과 같으니라"
〈제13 여법수지분〉에서는
심지어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많은 목숨을 보시했더라도〈이항하사등신명보시〉 그 복은 금강경가운에 사구게 만이라고 받아지녀서<어 차경중 내지사구게등〉 다른이들에게 설하는〈위타인설> 그 복이 더욱 많다고〈기복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16 능정업장분〉에서는
이경을 받아지니며 읽고 외울때〈수지독송차경> 누군가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욕을 먹는다면〈약위인경천〉이 사람은 금생에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으로써〈이금세인경천고> 전생의 업장소멸이 되는것이다〈선세죄업 즉위소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금강경수지 독송하는 그 공덕에 대해서〈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만약에 구체적으로 상세히 이야기해준다면<아약구설자>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듣고〈혹유인문> 바로 미쳐버릴것이거나〈심즉광란> 의심하고 도저히 믿지 않을것이다〈호의불신>.
그리고 이 경의 뜻〈당지시경의>도 가히 생각할 수 없고〈불가사의〉 과보 또한 생각할 수없다〈과보역불가사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호의불신이라는 말은 여우같은 의심을 낸다는 말입니다. 여우의 의심병을 부처님께서 금강경의 수지독송의 공덕을 의심하는 이들의 비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금강경의 말씀을 혹시 못 믿거나 의심을 낼까하는 노파심에 〈제14분〉에서 "내말 좀 믿어라, 내가 너희들한테 설마 거짓말하겠나"라고 정말 이 말씀들이 진실이고 거짓이 없는것이라고 두번 세번 강조하시는 부처님의 자상함에 한번 더 머리가 숙여지는 구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여래는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시진어자>,
실다운말을 하는 자며<실어자>,
사실과 같이 말을 하는 자며〈여어자〉,
거짓이 아닌 말을 하는 자며〈불광어자>,
다르지않은 말을 하는 자니라〈불이어자>,"
그리고 우리들이 금강경 수지독송해서 복을 받고 공덕을 얻것으로만 만족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거나 실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것을 우려해서 금강경 수지독송의 공덕을 설하시면서도 잊지않고 당부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공덕과 복덕의 형상에 머물러 탐착하고 집착함을 경책하셨습니다.
그래서 〈제28 불수불탐분〉에서도
보살은 복덕을 지을뿐〈보살 소작복덕>
그 복덕에 탐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기에〈불응 탐착> 이런 까닭에 복덕을 받지 않는다〈시고설 불수복덕>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덕이라는 어떤 고정된 성품이 본디 없음을 알아서 그 가운데 집착하는 헛된 마음을 내려놓았을때 진정한 경전수지독송 공덕이 완성되는 것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육조 혜능스님이 출가 전에 나무지게를 지고 주막을 지나다가 어떤이가 금강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마침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열리었듯이 계룡산 신원사 불자님들도 어느 구절 어느 곳에서 마음이 확 열리어 밝아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