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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5.29 조회287회 댓글0건

본문

멸성제(滅聖諦) - 심화 4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 역시 이 우주 전체로부터 따로 떼어 놓고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를 《반야심경》에서는 오온개공(五蘊皆空) 이라고 표현합니다.
흔히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으로 이루어진 오온이 공하다고 하면, "모든 것이 허망하고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空)을 매우 단편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오온은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오온이 공하다는 것은 존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하고 관계하며 하나의 전체성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텅 비어 있는 허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품고 있으며 모든 것이 그 안에서 드러나듯이, 공(空) 또한 모든 존재의 근원적이고 전체적인 진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공을 다른 이름으로는 불성(佛性), 참나,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여자성(眞如自性)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是諸法空相 (시제법공상)
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은 공한 성품이며,
不生不滅 (불생불멸)
생겨난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으며,
不垢不淨 (불구부정)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不增不減 (부증불감)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참마음이라는 거울 위에는 수많은 인연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기쁨도 오고 슬픔도 오며, 생각도 일어나고 감정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거울은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무엇이 비치든 거울 자체에는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육조 혜능대사께서는 이러한 자리를
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다."
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만약 오온을 단지 생겨나고 머물고 변하여 사라지는 개체적 존재로만 본다면,
生住異滅 (생주이멸)
하는 무상한 현상 속에서 어떻게 불생불멸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불생불멸은 개별적 존재의 차원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포괄하는 전체성의 자리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점을 바로 보아야 비로소 공(空)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조 혜능스님께서는 이러한 불성의 자리를 《육조단경》에서
무상(無相) · 무주(無住) · 무념(無念)
세 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
모양이 없으므로 무상(無相)이고,
머물러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으므로 무주(無住)이며,
생각으로 붙잡을 수 없으므로 무념(無念)입니다.

허공을 손으로 잡을 수 없듯이, 불성 또한 형상으로 볼 수도 없고 생각으로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는 《수심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但知不會是卽見性 (단지불회시즉견성)
"다만 알 수 없음을 알면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다."

이 자리는 생각으로 이해하거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스스로 체험하여 계합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空)은 그저 텅 비어 있고 고요하기만 한 것일까요?

그 또한 아닙니다.
소리가 나면 소리인 줄 알고, 빛이 나타나면 빛인 줄 알며,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인 줄 아는, 신묘하고 밝은 작용이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
보조국사 스님은 이를
영지(靈知) 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텅 비어 있으면서도 분명히 알고, 머무름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비추며, 고요하면서도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밝은 작용입니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이를 두고
"공(空)이 춤춘다."
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선방에서 좌선을 하던 중의 일입니다.
큰방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가
"똑, 딱... 똑, 딱..."
하고 들리는데, 그 소리가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이 자리의 진실을 툭툭 찔러 일깨워 주는 듯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시계가 저 멀리 있어서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의 허공에서 소리가 일어나고,
허공이 듣고,
허공이 알고,
허공이 응답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듣는 나와 들리는 소리가 둘이 아니고,
안과 밖이 나뉘지 않은 채,
한바탕 전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벙어리가 어젯밤 꿈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로 설명하는 순간 이미 본래의 자리에서 멀어집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입만 열면 틀린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을 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은 아니지만, 손가락마저 없다면 달을 바라볼 인연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알 수 없는 그 자리를 향해
어버버, 어버버 하며
한마디를 더 보태고 있을 뿐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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