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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6.06 조회300회 댓글0건본문
도성제(道聖諦) - 3
업(業)의 강을 건너는 지혜
우리는 올 때도 빈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갑니다. 평생 모은 재산도, 명예도, 사랑했던 물건도 하나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끝까지 우리를 따라갑니다. 바로 내가 지은 업(業)입니다.
초발심 수행자의 지침서인 《자경문(慈鏡文)》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來無一物來 (내무일물래)
올 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고
去亦空手去 (거역공수거)
갈 때 또한 빈손으로 갈 뿐이다.
萬般將不去 (만반장불거)
어떠한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唯有業隨身 (유유업수신)
오직 지은 업만이 따라갈 뿐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소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은 결국 내 것이 아닙니다. 집착하며 움켜쥐고 있는 재산도, 권력도, 인간관계도 모두 이 세상에 두고 가야 합니다. 오직 선업(善業)과 악업(惡業), 내가 살아오며 지어온 행위의 결과만이 다음 생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삶의 모습도 우연이 아닙니다.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좋은 인연도, 힘겨운 인연도 결국은 내가 지은 업의 결과입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욕지미래사 금생작자시
(欲知未來事 今生作者是)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그것이다.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지금 내가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은 누구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부모의 탓도 아니고, 자식의 탓도 아니고, 세상의 탓만도 아닙니다.
결국은 내가 지은 인연을 내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자신을 자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희망의 가르침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내 안에 있다면, 그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 또한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도성제(道聖諦)의 출발입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수행을 강을 건너는 일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넙니다. 이는 참선과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는 자력(自力)의 길입니다.
반면 이미 만들어진 큰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과 보살님의 원력(願力)에 의지하는 타력(他力)의 길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치가 있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도 물에 던지면 곧바로 가라앉습니다. 이것은 업의 무게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집채만 한 바위도 거대한 배 위에 올려놓으면 물에 뜰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업장이 아무리 무겁고 깊다 하더라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부처님과 보살님의 약속인 원력이라는 큰 배에 올라탄다면 능히 고해를 건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력만 말하지도 않고, 타력만 말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노를 젓되 부처님의 바람을 함께 받는 다면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수행의 길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매월 첫째주 금요일 저녁8시~10시 금강경독송법회를 합니다.
어제도 많은 분들이 동참하셔서 함께 도성제의 실천으로 금강경을 독송하며 지혜와 복덕을 증장하는 공부인연을 지었습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경









업(業)의 강을 건너는 지혜
우리는 올 때도 빈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갑니다. 평생 모은 재산도, 명예도, 사랑했던 물건도 하나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끝까지 우리를 따라갑니다. 바로 내가 지은 업(業)입니다.
초발심 수행자의 지침서인 《자경문(慈鏡文)》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來無一物來 (내무일물래)
올 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고
去亦空手去 (거역공수거)
갈 때 또한 빈손으로 갈 뿐이다.
萬般將不去 (만반장불거)
어떠한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唯有業隨身 (유유업수신)
오직 지은 업만이 따라갈 뿐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소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은 결국 내 것이 아닙니다. 집착하며 움켜쥐고 있는 재산도, 권력도, 인간관계도 모두 이 세상에 두고 가야 합니다. 오직 선업(善業)과 악업(惡業), 내가 살아오며 지어온 행위의 결과만이 다음 생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삶의 모습도 우연이 아닙니다.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좋은 인연도, 힘겨운 인연도 결국은 내가 지은 업의 결과입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욕지미래사 금생작자시
(欲知未來事 今生作者是)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그것이다.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지금 내가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은 누구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부모의 탓도 아니고, 자식의 탓도 아니고, 세상의 탓만도 아닙니다.
결국은 내가 지은 인연을 내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자신을 자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희망의 가르침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내 안에 있다면, 그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 또한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도성제(道聖諦)의 출발입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수행을 강을 건너는 일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넙니다. 이는 참선과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는 자력(自力)의 길입니다.
반면 이미 만들어진 큰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과 보살님의 원력(願力)에 의지하는 타력(他力)의 길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치가 있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도 물에 던지면 곧바로 가라앉습니다. 이것은 업의 무게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집채만 한 바위도 거대한 배 위에 올려놓으면 물에 뜰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업장이 아무리 무겁고 깊다 하더라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부처님과 보살님의 약속인 원력이라는 큰 배에 올라탄다면 능히 고해를 건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력만 말하지도 않고, 타력만 말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노를 젓되 부처님의 바람을 함께 받는 다면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수행의 길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매월 첫째주 금요일 저녁8시~10시 금강경독송법회를 합니다.
어제도 많은 분들이 동참하셔서 함께 도성제의 실천으로 금강경을 독송하며 지혜와 복덕을 증장하는 공부인연을 지었습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