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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5.10 조회290회 댓글0건본문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멸성제(滅聖諦) 8
지금까지 우리는 의심 한 번 없이
이 몸과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늘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것들은
‘나’가 아니라
내가 보고 알고 느끼는 대상(對象)일 뿐입니다.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대상이지, 그것을 아는 ‘참나’ 자체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내가 아닌 것들, 다만 나에게 잠시 인연하여 나타난 작용과 소유를 붙잡고 그것을 ‘나’라고 착각해 왔습니다.
우리의 괴로움 또한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나’라고 굳게 믿어왔던 몸과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입니다.
육신의 이 몸을 나라고 믿고 있었기에,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어 사라지는 일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 생각과 다르게 말하면 생각은 내가 아닌데도 마치 내가 공격받는 듯 괴로워하고,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리면 감정은 잠시 일어난 반응일 뿐인데도 내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것처럼 흔들립니다.
그러나 만약, 이 몸이 내가 아니고, 느낌이 내가 아니고, 생각이 내가 아니고, 감정이 내가 아니고, 욕망이 내가 아니고, 인식작용마저 내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바로 이 ‘나’라는 존재를 밝히는 물음, “대체 무엇이 나인가?” 이 물음이 곧 선(禪)의 시작입니다.
아직 잘 와닿지 않는다면 지금 자기 허벅지를 한번 꼬집어 보십시오.
아프십니까?
분명 허벅지를 꼬집었으니 우리는 쉽게 “허벅지가 아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묘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육신을 지수화풍(地水火風), 곧 땅·물·불·바람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인연 따라 잠시 모인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몸은 결국 한 덩이 물질에 불과한데, 죽은 송장의 몸뚱이와 무엇이 다르기에 “아프다”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까?
고기 덩어리 자체는 아픈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수(受)·상(想)·행(行)·식(識), 곧 느낌과 생각과 감정과 인식작용이 아픈 줄 아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들 또한 찰나찰나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기쁨도 잠시, 슬픔도 잠시, 생각도 잠시 머물다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그 수없이 변하는 것들 가운데 도대체 무엇이 “아프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 뭣 고 ?
우리가 ‘나’라고 붙잡고 있는 몸과 정신은 모두 인연 따라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무상한 조합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실체를 깊이 살펴보면 본래 고정된 자아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말씀하십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오온이 본래 공함을 밝게 보면, 일체의 괴로움과 근심 걱정을 건너게 된다는 뜻입니다.
수행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더 얻는 일이 아니라, 내가 아니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우리가 이미 본래 갖추고 있는 진실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불교대학 17기 사성제 강의를 하였습니다.
연등 축원문 꼬리표 교체 작업과 연등접수 봉사모습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탑 점안식 신원사 화이팅~~~










멸성제(滅聖諦) 8
지금까지 우리는 의심 한 번 없이
이 몸과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늘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것들은
‘나’가 아니라
내가 보고 알고 느끼는 대상(對象)일 뿐입니다.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대상이지, 그것을 아는 ‘참나’ 자체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내가 아닌 것들, 다만 나에게 잠시 인연하여 나타난 작용과 소유를 붙잡고 그것을 ‘나’라고 착각해 왔습니다.
우리의 괴로움 또한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나’라고 굳게 믿어왔던 몸과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입니다.
육신의 이 몸을 나라고 믿고 있었기에,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어 사라지는 일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 생각과 다르게 말하면 생각은 내가 아닌데도 마치 내가 공격받는 듯 괴로워하고,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리면 감정은 잠시 일어난 반응일 뿐인데도 내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것처럼 흔들립니다.
그러나 만약, 이 몸이 내가 아니고, 느낌이 내가 아니고, 생각이 내가 아니고, 감정이 내가 아니고, 욕망이 내가 아니고, 인식작용마저 내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바로 이 ‘나’라는 존재를 밝히는 물음, “대체 무엇이 나인가?” 이 물음이 곧 선(禪)의 시작입니다.
아직 잘 와닿지 않는다면 지금 자기 허벅지를 한번 꼬집어 보십시오.
아프십니까?
분명 허벅지를 꼬집었으니 우리는 쉽게 “허벅지가 아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묘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육신을 지수화풍(地水火風), 곧 땅·물·불·바람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인연 따라 잠시 모인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몸은 결국 한 덩이 물질에 불과한데, 죽은 송장의 몸뚱이와 무엇이 다르기에 “아프다”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까?
고기 덩어리 자체는 아픈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수(受)·상(想)·행(行)·식(識), 곧 느낌과 생각과 감정과 인식작용이 아픈 줄 아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들 또한 찰나찰나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기쁨도 잠시, 슬픔도 잠시, 생각도 잠시 머물다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그 수없이 변하는 것들 가운데 도대체 무엇이 “아프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 뭣 고 ?
우리가 ‘나’라고 붙잡고 있는 몸과 정신은 모두 인연 따라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무상한 조합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실체를 깊이 살펴보면 본래 고정된 자아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말씀하십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오온이 본래 공함을 밝게 보면, 일체의 괴로움과 근심 걱정을 건너게 된다는 뜻입니다.
수행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더 얻는 일이 아니라, 내가 아니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우리가 이미 본래 갖추고 있는 진실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불교대학 17기 사성제 강의를 하였습니다.
연등 축원문 꼬리표 교체 작업과 연등접수 봉사모습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탑 점안식 신원사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