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밴드글 (2026-05-2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5.22 조회292회 댓글0건본문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멸성제(滅聖諦) - 심화반 ①
불성(佛性)과 무아(無我)는 서로 다른가?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이 대승불교나 선불교를 접하면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성(佛性)입니다.
‘불성’, ‘참나’, ‘주인공’, ‘본래면목’, ‘진여본성’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치 우리 안에 어떤 영원불변한 실체가 숨어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불성은 무아와 다르다.” “참나를 말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나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성을 하나의 대상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선종에서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육조 혜능(六祖慧能) 스님을 찾아온 남악회양(南嶽懷讓) 스님에게 혜능 스님이 물었습니다.
여하물 임마래(如何物 恁麼來)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회양 스님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8년 뒤 다시 찾아와 이렇게 답합니다.
설사일물 즉부중(說似一物 卽不中)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불성은 어떤 물건도 아니고, 어떤 실체도 아니며, 붙잡을 수 있는 무엇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그것을 가리켜 불성이라 하기도 하고, 참나라 하기도 하고, 주인공이라 하기도 하고, 본래면목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마치 토끼뿔(兔角)과 거북이 털(龜毛)이라는 말이 있다고 해서 실제 그런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이름은 있으나 붙잡을 실체는 없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끊임없이 모든 이름과 개념을 깨뜨립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즉비~시명(卽非~是名)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이름할 뿐이다.”
《금강경》 제13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며, 다만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다.”
이처럼 금강경은 우리가 이름을 붙이면 곧바로 실체가 있다고 착각하는 습관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성도,
불성즉비불성시명불성
(佛性卽非佛性是名佛性)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성이라 하지만 불성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이름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낼 이어서~
공군사관후보생71기동기회 임관50주년 기념행사로 행군코스답사에 마지막으로 신원사에 들리셨습니다.
6교구 신도회장 안병권 회장님 동기생들이십니다. 이제 머리 허연 노병이시지만 나라를 위하고 후배 사관 후보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임관50주년을 맞아 동기분들께서 모이셨다고 합니다.
대웅전에서 간단히 법문도 해드렸습니다.
모두들 좋아하시네요.





멸성제(滅聖諦) - 심화반 ①
불성(佛性)과 무아(無我)는 서로 다른가?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이 대승불교나 선불교를 접하면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성(佛性)입니다.
‘불성’, ‘참나’, ‘주인공’, ‘본래면목’, ‘진여본성’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치 우리 안에 어떤 영원불변한 실체가 숨어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불성은 무아와 다르다.” “참나를 말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나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성을 하나의 대상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선종에서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육조 혜능(六祖慧能) 스님을 찾아온 남악회양(南嶽懷讓) 스님에게 혜능 스님이 물었습니다.
여하물 임마래(如何物 恁麼來)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회양 스님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8년 뒤 다시 찾아와 이렇게 답합니다.
설사일물 즉부중(說似一物 卽不中)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불성은 어떤 물건도 아니고, 어떤 실체도 아니며, 붙잡을 수 있는 무엇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그것을 가리켜 불성이라 하기도 하고, 참나라 하기도 하고, 주인공이라 하기도 하고, 본래면목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마치 토끼뿔(兔角)과 거북이 털(龜毛)이라는 말이 있다고 해서 실제 그런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이름은 있으나 붙잡을 실체는 없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끊임없이 모든 이름과 개념을 깨뜨립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즉비~시명(卽非~是名)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이름할 뿐이다.”
《금강경》 제13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며, 다만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다.”
이처럼 금강경은 우리가 이름을 붙이면 곧바로 실체가 있다고 착각하는 습관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성도,
불성즉비불성시명불성
(佛性卽非佛性是名佛性)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성이라 하지만 불성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이름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낼 이어서~
공군사관후보생71기동기회 임관50주년 기념행사로 행군코스답사에 마지막으로 신원사에 들리셨습니다.
6교구 신도회장 안병권 회장님 동기생들이십니다. 이제 머리 허연 노병이시지만 나라를 위하고 후배 사관 후보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임관50주년을 맞아 동기분들께서 모이셨다고 합니다.
대웅전에서 간단히 법문도 해드렸습니다.
모두들 좋아하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