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밴드글 (2026-04-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4.13 조회289회 댓글0건본문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집성제(集聖諦) -6
걸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1)
봄이 오면 옷장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두툼하게 껴입던 겨울옷을 접어 넣고,
가벼운 옷을 하나둘 꺼내어 걸어둡니다.
몸에 닿는 옷이 달라지면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늘
무언가를 걸치고 살아갑니다.
오늘은
“걸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조용히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는 어디 사는 누구입니다.”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입니다.”
그 말 한마디로
서로를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이름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사는 곳도 바뀌고,
직장과 자리도 바뀝니다.
저 또한 출가 전의 이름이 있었고,
출가 후에는 다른 이름을 받았으며,
스스로의 서원을 담아
또 하나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찌 ‘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며 붙이고 다니는 것들,
이름, 집, 직장, 직책들은
입고 있는 옷과 들고 있는 물건들처럼
때로는 신념과 종교까지도
모두 잠시 인연 따라 걸쳐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나와 하나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내 집이니까”
“내 자리니까”
“내 생각이니까”
이렇게 붙잡는 순간,
그것은 곧 ‘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흔들리면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이 걸치고 있는 지위와 재산을
곧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에
그것이 조금이라도 침해당한다고 느끼면
분노하고, 무너지고, 때로는
남을 해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신념과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생각을 ‘나’로 여기고 있기에
다른 의견과 부딪히면
마치 나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해지고,
때로는 등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만 물러나서 바라보면
우리가 그렇게 애써 붙잡고 있는 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계절 따라 바꿔입는 옷처럼,
인연 따라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들입니다.
옷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듯이,
이름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참된 ‘나’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조금씩 알아차릴 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을
지키려 애쓰지 않게 되고,
붙잡지 않아도 될 것을
놓지 못해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저
입을 때는 입고,
벗을 때는 벗으면 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걸치고 있는 것들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 위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걸치고 있는 것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왔구나.
그 알아차림 하나가
내가 쥐고 놓치 못하던
번뇌와 집착으로 부터
조금씩 자유로워 질수 있습니다.
낼 이어서
관음재일기도 법회- 42수진언 합송
다도반 차밥만들기 체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원걸스님 경전반 강의
서광회 봉사
연등달기봉사










집성제(集聖諦) -6
걸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1)
봄이 오면 옷장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두툼하게 껴입던 겨울옷을 접어 넣고,
가벼운 옷을 하나둘 꺼내어 걸어둡니다.
몸에 닿는 옷이 달라지면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늘
무언가를 걸치고 살아갑니다.
오늘은
“걸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조용히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는 어디 사는 누구입니다.”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입니다.”
그 말 한마디로
서로를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이름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사는 곳도 바뀌고,
직장과 자리도 바뀝니다.
저 또한 출가 전의 이름이 있었고,
출가 후에는 다른 이름을 받았으며,
스스로의 서원을 담아
또 하나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찌 ‘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며 붙이고 다니는 것들,
이름, 집, 직장, 직책들은
입고 있는 옷과 들고 있는 물건들처럼
때로는 신념과 종교까지도
모두 잠시 인연 따라 걸쳐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나와 하나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내 집이니까”
“내 자리니까”
“내 생각이니까”
이렇게 붙잡는 순간,
그것은 곧 ‘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흔들리면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이 걸치고 있는 지위와 재산을
곧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에
그것이 조금이라도 침해당한다고 느끼면
분노하고, 무너지고, 때로는
남을 해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신념과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생각을 ‘나’로 여기고 있기에
다른 의견과 부딪히면
마치 나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해지고,
때로는 등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만 물러나서 바라보면
우리가 그렇게 애써 붙잡고 있는 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계절 따라 바꿔입는 옷처럼,
인연 따라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들입니다.
옷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듯이,
이름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참된 ‘나’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조금씩 알아차릴 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을
지키려 애쓰지 않게 되고,
붙잡지 않아도 될 것을
놓지 못해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저
입을 때는 입고,
벗을 때는 벗으면 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걸치고 있는 것들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 위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걸치고 있는 것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왔구나.
그 알아차림 하나가
내가 쥐고 놓치 못하던
번뇌와 집착으로 부터
조금씩 자유로워 질수 있습니다.
낼 이어서
관음재일기도 법회- 42수진언 합송
다도반 차밥만들기 체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원걸스님 경전반 강의
서광회 봉사
연등달기봉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