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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4.16 조회296회 댓글0건본문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집성제(集聖諦) -7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지리산 선방 소식
2009년 여름, 지리산 화엄사에서 안거를 지내던 때의 일입니다.
차의 향기가 깊은 그곳에서는,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레 뒷산으로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가벼운 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 잔의 차를 나누는 시간. 그것이 그 시절 우리에게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깊은 여유였고, 하루 중 가장 맑은 낙이었습니다.
그 무렵 대중 스님들 사이에서는 말차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곱게 간 차를 자완에 담고, 대나무 차선으로 빠르게 저어 올리면 하얀 거품이 부드럽게 일어났습니다. 손목의 힘을 조절하며 차를 일으키는 그 모습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수행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님들마다 하나씩 자완을 챙겨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 안거철, 유독 눈길을 끄는 자완 하나가 있었습니다. 문경의 도공, 천왕봉 선생의 작품이라 했습니다.
흰 분청의 빛깔이 투박하면서도 단아했고, 소박하면서도 묘한 기품이 배어 있었습니다. 한 번 만져보면 괜히 더 오래 손에 쥐고 싶어지는 그런 그릇이었습니다. 값 또한 만만치 않아,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스님들은 돌아가며 그 자완을 손에 올려보고는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이건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작품입니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참으로 깊습니다.”
그 말을 듣는 자완의 주인 스님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면서도, 어쩐지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은 한 스님이 그 자완을 들고 수곽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런 그릇은 지리산 맑은 기운을 받아야지요.”
그렇게 말하며 수곽의 흐르는 물에 받혀 두었는데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그럴듯해 보이던지요. 그 후로 그 자완은 수곽을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저 그릇 하나였을 뿐인데, 모두가 귀한 것을 대하듯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한철이 지나고, 겨울 안거는 통도사 극락암선원에서 이어졌습니다.
그 자완의 주인 스님도 함께 방부를 들였습니다.
어느 날 반가운 마음에 그 스님 방을 찾았습니다.
차 한 잔 나누려 앉았는데, 한약 봉지를 데우는 그릇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딘가 낯이 익었습니다.
며칠 뒤 다시 들렀을 때는, 그 그릇이 이번에는 검고 걸쭉한 경옥고를 담는 약사발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님, 혹시 저 그릇… 화엄사에서 보던 그 자완 아닙니까?”
스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습니다.
“아, 그거요… 문경에 들른 김에 만든 분을 찾아갔지요. 언제 만든 작품인지 물어보려고요. 그랬더니… 그게 자완이 아니고, 퇴수기라더군요. 차 찌꺼기 버리는 그릇이랍니다.”
순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후로 그 그릇은 사과 껍질을 담기도 하고, 약을 담기도 하는 그저 그런 그릇이 되었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접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때는 왕대접처럼 귀하게 여겨지던 것이, 어느새 일상 속 평범한 그릇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릇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귀하다 여길 때는 더없이 귀했고,
알고 보니 평범하다 하니 그저 그런 물건이 되었습니다.
누가 그 그릇더러 귀하다고 말했습니까.
누가 스스로를 드러내며 값어치를 주장했습니까.
모두 우리의 마음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모든 모양에서 모양아닌 자리를 본다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우리는 늘 겉모양에 속습니다.
이름에 속고, 값에 속고, 이야기 속에 속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그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잠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릇은 그릇일 뿐입니다.
사람도, 일도, 인연도 그러합니다.
그것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것도,
그것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지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리산의 바람 속에서,
그 작은 그릇 하나가
조용히 한 가지를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이 비친 결과다.”
이 도리에 밝아지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도
괴로움은 스스로 힘을 잃습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집성제(集聖諦) -7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지리산 선방 소식
2009년 여름, 지리산 화엄사에서 안거를 지내던 때의 일입니다.
차의 향기가 깊은 그곳에서는,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레 뒷산으로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가벼운 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 잔의 차를 나누는 시간. 그것이 그 시절 우리에게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깊은 여유였고, 하루 중 가장 맑은 낙이었습니다.
그 무렵 대중 스님들 사이에서는 말차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곱게 간 차를 자완에 담고, 대나무 차선으로 빠르게 저어 올리면 하얀 거품이 부드럽게 일어났습니다. 손목의 힘을 조절하며 차를 일으키는 그 모습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수행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님들마다 하나씩 자완을 챙겨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 안거철, 유독 눈길을 끄는 자완 하나가 있었습니다. 문경의 도공, 천왕봉 선생의 작품이라 했습니다.
흰 분청의 빛깔이 투박하면서도 단아했고, 소박하면서도 묘한 기품이 배어 있었습니다. 한 번 만져보면 괜히 더 오래 손에 쥐고 싶어지는 그런 그릇이었습니다. 값 또한 만만치 않아,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스님들은 돌아가며 그 자완을 손에 올려보고는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이건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작품입니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참으로 깊습니다.”
그 말을 듣는 자완의 주인 스님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면서도, 어쩐지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은 한 스님이 그 자완을 들고 수곽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런 그릇은 지리산 맑은 기운을 받아야지요.”
그렇게 말하며 수곽의 흐르는 물에 받혀 두었는데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그럴듯해 보이던지요. 그 후로 그 자완은 수곽을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저 그릇 하나였을 뿐인데, 모두가 귀한 것을 대하듯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한철이 지나고, 겨울 안거는 통도사 극락암선원에서 이어졌습니다.
그 자완의 주인 스님도 함께 방부를 들였습니다.
어느 날 반가운 마음에 그 스님 방을 찾았습니다.
차 한 잔 나누려 앉았는데, 한약 봉지를 데우는 그릇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딘가 낯이 익었습니다.
며칠 뒤 다시 들렀을 때는, 그 그릇이 이번에는 검고 걸쭉한 경옥고를 담는 약사발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님, 혹시 저 그릇… 화엄사에서 보던 그 자완 아닙니까?”
스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습니다.
“아, 그거요… 문경에 들른 김에 만든 분을 찾아갔지요. 언제 만든 작품인지 물어보려고요. 그랬더니… 그게 자완이 아니고, 퇴수기라더군요. 차 찌꺼기 버리는 그릇이랍니다.”
순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후로 그 그릇은 사과 껍질을 담기도 하고, 약을 담기도 하는 그저 그런 그릇이 되었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접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때는 왕대접처럼 귀하게 여겨지던 것이, 어느새 일상 속 평범한 그릇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릇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귀하다 여길 때는 더없이 귀했고,
알고 보니 평범하다 하니 그저 그런 물건이 되었습니다.
누가 그 그릇더러 귀하다고 말했습니까.
누가 스스로를 드러내며 값어치를 주장했습니까.
모두 우리의 마음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모든 모양에서 모양아닌 자리를 본다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우리는 늘 겉모양에 속습니다.
이름에 속고, 값에 속고, 이야기 속에 속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그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잠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릇은 그릇일 뿐입니다.
사람도, 일도, 인연도 그러합니다.
그것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것도,
그것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지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리산의 바람 속에서,
그 작은 그릇 하나가
조용히 한 가지를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이 비친 결과다.”
이 도리에 밝아지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도
괴로움은 스스로 힘을 잃습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