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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5.11 조회294회 댓글0건본문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손과 눈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울고 있는 중생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 쓰러진 이를 보면 먼저 손 내미는 자비,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비추어주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천수관음 점안식은
“불상에 혼을 넣는다”는 의미를 넘어,
그 자비와 원력을 이 도량 가운데 모시고
동시에 우리 마음 안에도 다시 밝혀 모시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식 가운데 붓끝으로 눈을 여는 순간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신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우리 또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동안 미워하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고,
상처라고만 여겼던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내 아픔만 붙들고 있던 좁은 마음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눈물도 함께 볼 수 있는 눈을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안의 가장 깊은 뜻은
불상을 깨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깨우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너무 많은 것을 보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놓친 채 살아갑니다.
곁에서 말없이 무너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애써 웃고 있지만 깊이 외로운 이의 삶도,
그리고 분주함 속에 지쳐버린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눈은 뜨고 있으나
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천수관음의 점안은
바로 그 잠든 우리의 마음의 눈을 다시 뜨게 하는 일입니다.
“이제 다시 보겠습니다.”
“이제 다시 듣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천 개의 눈은
세상을 감시하는 눈이 아니라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눈입니다.
천 개의 손은
무언가를 움켜쥐는 손이 아니라
아픈 존재를 일으켜 세우는 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천수관음의 의미는
단지 개인의 복을 비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지친 이를 보면 잠시 곁에 머물러 주며,
절망 속의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천수관음의 자비입니다.
결국 점안의 마지막 완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아주는 눈이 될 때,
누군가를 살리는 손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천수관음은
불단 위에만 머무는 형상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천수관음 점안은
한 불상의 눈을 여는 의식이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자비를 다시 깨우는
간절한 서원이자 발원인 것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천수관음전에 새로이 점안하여 모신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계룡산 신원사에 강림하시어 중생의 번뇌와 괴로움을 살펴주서 복덕이 구족하길 축원합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 강기를 쉽게 풀어 출판하여 점안식 당일 법보시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가 늘 함께하시길 ..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손과 눈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울고 있는 중생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 쓰러진 이를 보면 먼저 손 내미는 자비,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비추어주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천수관음 점안식은
“불상에 혼을 넣는다”는 의미를 넘어,
그 자비와 원력을 이 도량 가운데 모시고
동시에 우리 마음 안에도 다시 밝혀 모시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식 가운데 붓끝으로 눈을 여는 순간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신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우리 또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동안 미워하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고,
상처라고만 여겼던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내 아픔만 붙들고 있던 좁은 마음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눈물도 함께 볼 수 있는 눈을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안의 가장 깊은 뜻은
불상을 깨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깨우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너무 많은 것을 보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놓친 채 살아갑니다.
곁에서 말없이 무너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애써 웃고 있지만 깊이 외로운 이의 삶도,
그리고 분주함 속에 지쳐버린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눈은 뜨고 있으나
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천수관음의 점안은
바로 그 잠든 우리의 마음의 눈을 다시 뜨게 하는 일입니다.
“이제 다시 보겠습니다.”
“이제 다시 듣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천 개의 눈은
세상을 감시하는 눈이 아니라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눈입니다.
천 개의 손은
무언가를 움켜쥐는 손이 아니라
아픈 존재를 일으켜 세우는 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천수관음의 의미는
단지 개인의 복을 비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지친 이를 보면 잠시 곁에 머물러 주며,
절망 속의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천수관음의 자비입니다.
결국 점안의 마지막 완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아주는 눈이 될 때,
누군가를 살리는 손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천수관음은
불단 위에만 머무는 형상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천수관음 점안은
한 불상의 눈을 여는 의식이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자비를 다시 깨우는
간절한 서원이자 발원인 것입니다.
내마음 관세음
날마다 좋은날
천수관음전에 새로이 점안하여 모신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계룡산 신원사에 강림하시어 중생의 번뇌와 괴로움을 살펴주서 복덕이 구족하길 축원합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 강기를 쉽게 풀어 출판하여 점안식 당일 법보시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가 늘 함께하시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