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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지 성관스님 작성일2026.07.07 조회159회 댓글0건본문
도성제(道聖諦) -8
있는 그대로 보아라
나를 두렵게 하고 괴롭게 하는 이 모든 고통을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진실로 그것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보는 것 — 이것이 도(道)의 첫걸음, 정견(正見)입니다.
지금 두렵다는 그 생각,
지금 괴롭다는 그 생각,
그 생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듯이, 생각의 물결과 감정의 물결도 인연과 조건이 갖추어지면 일어나고, 조건이 다하면 사라집니다.
나무 그림자가 나무에 기대어 있고
메아리가 소리에 기대어야만 존재하듯이,
생각과 감정 또한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실체 없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조건에 따라 일어나 다만 물결칠 뿐임을 바로 보는 것, 그 지혜가 바로 정견입니다.
괴로움도, 두려움도, 외로움도, 답답함도
조건이 지어지면 일어나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니 그 물결의, 그 그림자의 모양에 붙들리지 않아도 됩니다.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만 대상일 뿐입니다.
내 모자, 내 옷, 내 신발이 곧 내가 아니듯이
지금 "나의 두려움", "나의 괴로움", "나의 외로움"이라 말할 때도 그 두려움과 괴로움과 외로움은 내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유하는 것,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을 돌이키는 것이 바로 정사유(正思惟)입니다.
지금 나에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도 모두 하나의 대상일 뿐이니, 나와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여기기에
괴로움과 외로움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다만 그럴 뿐입니다.
다만 괴로울 뿐이고
다만 두려울 뿐이고
다만 외로울 뿐입니다.
판단하지도, 이름 붙이지도,
분별하지도 않고
그저 지켜보는 이 알아차림이 정념(正念)입니다.
생각과 감정을 애써 인정하려 하거나, 애써 없애려 하는 것도 모두 하나의 조작입니다.
싫어하며 밀어내려는 마음도, 좋아하며 붙잡으려는 마음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애씀일 뿐이니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것이 정정진(正精進)입니다.
인연 따라 왔다가는 그림자를 실체로 여기지 않고 그저 그러할 뿐, 그대로 두는 것,
이것이 참된 노력인 정정진입니다.
실체 없는 그림자를 참된 것으로 여겨 이리저리 분별하고 그 그림자를 다시 붙잡고 놓지 못하는 데서 고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그저 지켜볼 때 마음은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고요한 자리에 저절로 머물게 됩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애써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괴로움은 이미 그 실체를 잃고 스스로 가라앉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아라
나를 두렵게 하고 괴롭게 하는 이 모든 고통을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진실로 그것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보는 것 — 이것이 도(道)의 첫걸음, 정견(正見)입니다.
지금 두렵다는 그 생각,
지금 괴롭다는 그 생각,
그 생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듯이, 생각의 물결과 감정의 물결도 인연과 조건이 갖추어지면 일어나고, 조건이 다하면 사라집니다.
나무 그림자가 나무에 기대어 있고
메아리가 소리에 기대어야만 존재하듯이,
생각과 감정 또한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실체 없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조건에 따라 일어나 다만 물결칠 뿐임을 바로 보는 것, 그 지혜가 바로 정견입니다.
괴로움도, 두려움도, 외로움도, 답답함도
조건이 지어지면 일어나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니 그 물결의, 그 그림자의 모양에 붙들리지 않아도 됩니다.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만 대상일 뿐입니다.
내 모자, 내 옷, 내 신발이 곧 내가 아니듯이
지금 "나의 두려움", "나의 괴로움", "나의 외로움"이라 말할 때도 그 두려움과 괴로움과 외로움은 내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유하는 것,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을 돌이키는 것이 바로 정사유(正思惟)입니다.
지금 나에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도 모두 하나의 대상일 뿐이니, 나와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여기기에
괴로움과 외로움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다만 그럴 뿐입니다.
다만 괴로울 뿐이고
다만 두려울 뿐이고
다만 외로울 뿐입니다.
판단하지도, 이름 붙이지도,
분별하지도 않고
그저 지켜보는 이 알아차림이 정념(正念)입니다.
생각과 감정을 애써 인정하려 하거나, 애써 없애려 하는 것도 모두 하나의 조작입니다.
싫어하며 밀어내려는 마음도, 좋아하며 붙잡으려는 마음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애씀일 뿐이니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것이 정정진(正精進)입니다.
인연 따라 왔다가는 그림자를 실체로 여기지 않고 그저 그러할 뿐, 그대로 두는 것,
이것이 참된 노력인 정정진입니다.
실체 없는 그림자를 참된 것으로 여겨 이리저리 분별하고 그 그림자를 다시 붙잡고 놓지 못하는 데서 고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그저 지켜볼 때 마음은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고요한 자리에 저절로 머물게 됩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애써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괴로움은 이미 그 실체를 잃고 스스로 가라앉습니다.


